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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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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녹색 혁명은 1950년대부터 개발도상국에서 식량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킨 일련의 농업 기술 개발 및 보급 운동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1968년 미국 국제 개발처 관리자 윌리엄 S. 고드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멕시코, 필리핀, 인도, 중국 등지에서 획기적인 식량 생산량 증가를 이끌었다. 녹색 혁명은 다수확 품종 개발, 관개 시설 확충, 화학 비료 및 농약 사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기아 감소와 식량 안보 강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환경 파괴, 사회 경제적 불평등 심화, 식량의 질 저하 등의 부정적인 영향도 지적되며,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제2의 녹색 혁명" 또는 "상록 혁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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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혁명
배경
노먼 볼로그가 키가 작은 밀을 들고 있다.
노먼 볼로그가 키가 작은 밀을 들고 있다.
개요
유형농업
기간1930년대 ~ 1960년대
장소멕시코,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기타 개발도상국
목표식량 생산량 증가, 기아 감소
주요 기술고수확 품종, 비료, 살충제, 관개
주요 작물, , 옥수수
주요 인물노먼 볼로그, 스와미나탄
긍정적 영향
식량 생산량 증가식량 생산량의 상당한 증가를 초래함.
기아 감소전 세계, 특히 아시아에서 기아와 영양실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됨.
농업 소득 증가농부의 소득을 늘리고 경제 성장을 촉진함.
토지 보존농업 생산성 증가로 인해 더 적은 토지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어 산림 벌채 및 서식지 손실 압력을 줄임.
부정적 영향
환경적 영향비료 및 살충제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토양, 수질 오염 및 생물 다양성 손실.
사회적 불평등 심화소규모 농민은 새로운 기술과 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워 불평등이 심화됨.
유전자 다양성 감소고수확 품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유전자 다양성이 감소하고, 병충해에 취약해짐.
건강 문제화학 비료와 살충제에 대한 노출 증가로 인한 건강 문제 발생 가능성 증가.
비판
지속 가능성 문제환경 파괴, 사회적 불평등 심화, 유전자 다양성 감소 등으로 인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됨.
식량 주권 침해다국적 기업의 종자 및 농자재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인해 식량 주권 침해 우려 제기됨.
지역 농업 시스템 붕괴지역의 전통적인 농업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농업 생태계를 단순화시킨다는 비판이 있음.
대안적 접근
생태 농업환경 보호와 생물 다양성 보존을 강조하는 농업 방식.
유기농업화학 비료와 살충제 사용을 제한하는 농업 방식.
지속 가능한 농업환경, 사회,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농업 방식.
관련 인물
주요 인물노먼 볼로그, 스와미나탄, 위안룽핑
기타
관련 정보식량 생산 증가에 기여했지만, 환경 및 사회적 문제도 야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역사

전통적인 재래 품종은 일정량 이상의 비료를 투입하면 줄기가 약해 쓰러지기 쉬워(도복) 오히려 수확량이 감소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고수량 품종(High Yield Varieties: HYVs)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멕시코에서 미국의 농학자 보얼로그 등이 개발한 멕시코 계통 단간(短稈, 줄기가 짧은 품종) 품종군이나, 필리핀 마닐라 교외의 국제 벼 연구소(IRRI)에서 개발된 품종 IR8 등이 있다. 이 품종들은 식물 전체의 키는 작지만 이삭의 길이는 유지하는 반왜성(半矮性) 유전자를 도입하여, 작물이 잘 쓰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덕분에 비료 사용량을 늘려 수확량을 증대시킬 수 있었고, 기후 조건의 영향도 덜 받아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해졌다. 고수량 품종은 생산 환경에 따라 항상 높은 수확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근래에는 근대 품종이라고도 불린다.

녹색 혁명에는 이러한 고수량 품종 개발 외에도 관개 시설 정비, 병해충 방제 기술 향상, 농업 기계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기여했다.[114]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이라는 용어 자체는 1968년 미국 국제 개발처(USAID)의 윌리엄 고드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14] 이 혁명이 확산되면서 초기 연구를 지원했던 록펠러 재단 외에도 포드 재단과 여러 개발도상국 정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115]

녹색 혁명은 1960년대 중반까지 심각하게 우려되던 아시아의 식량 위기를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수요 증가를 넘어서는 공급 증가는 식량 안보 확보로 이어졌고, 곡물 가격의 장기적인 하락은 도시 노동자를 비롯한 소비자, 특히 식비 지출 비율(엥겔 계수)이 높은 빈곤층에게 큰 경제적 혜택을 주었다.[116] 일각에서는 곡물 가격 하락이 산림 벌채를 통한 경작지 확대 유인을 줄여 환경 보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117]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 센터(CIMMYT)에서 고수량 품종 개발을 이끌며 녹색 혁명에 크게 기여한 노먼 볼로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지역별로 보면, 동남아시아에서는 1950년 대비 쌀 생산량이 약 4.5배 증가했는데, 이는 수확 면적 증가(약 1.8배)보다 단위 면적당 수량 증가(2.5배)의 기여가 훨씬 컸음을 보여준다.[118] 반면 남아시아는 경작 가능지가 적고 생산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했으며, 필리핀 등에서 개발된 품종을 현지 환경에 맞게 개량하는 데 시간이 걸려 녹색 혁명 도입이 늦었다. 이로 인해 남아시아의 수량 및 생산량 증가세는 동남아시아보다 완만했지만,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수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118] 비교적 늦게 녹색 혁명이 시작된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는 1990년대에도 수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118][119]

2. 1. 용어의 사용

"녹색 혁명"이라는 용어는 1968년 3월 8일 미국 국제 개발처(USAID)의 관리자인 윌리엄 S. 고드가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의 확산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러한 발전과 농업 분야의 다른 발전은 새로운 혁명의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련의 폭력적인 붉은 혁명도 아니고, 이란 샤백색 혁명도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녹색 혁명이라고 부릅니다.[16]

2. 2. 멕시코에서의 발전

멕시코는 녹색 혁명의 '요람'이자 '무덤'으로 불린다.[17] 20세기 동안 멕시코 혁명 (1910–1920)과 녹색 혁명 (1940–1970)이라는 두 개의 '혁명'이 멕시코 농촌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18]

녹색 혁명의 계기는 1940년, 당시 미국 부통령 당선자였던 헨리 A. 월리스의 멕시코 방문이었다. 그는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농무부 장관을 지냈고, 파이오니어 하이브리드사를 설립하여 옥수수 종자 개량에 기여한 인물이다. 월리스는 멕시코 농민들이 옥수수 1부셸 생산에 500시간을 투입하는 등 매우 낮은 생산성에 충격을 받았다. 이는 당시 아이오와 농부보다 약 50배나 비효율적인 수준이었다.[19] 그는 록펠러 재단을 설득하여 멕시코의 건조한 기후에 맞는 옥수수와 밀 품종 개발을 위한 농업 연구소 설립 자금을 지원하도록 했고, 젊은 농학자 노먼 볼로그를 책임자로 영입했다.[20]

이 프로젝트는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 당시 멕시코 대통령과 미국 정부, 유엔, 식량 농업 기구 (FAO)의 지지를 받았다. 미국은 멕시코를 농업 기술 및 과학 전문 지식 활용의 중요한 실험 사례로 보았고, 이는 국제 농업 개발의 모델이 되었다.[21] 멕시코는 관개 농업을 중심으로 농업 생산성을 높여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22] 당시 멕시코 중부와 남부 지역은 대규모 생산의 어려움으로 농업 생산이 정체되어 있었다.[23] 생산량 증대는 증가하는 도시 인구를 부양하고 멕시코인의 칼로리 섭취량을 늘리는 동시에,[24] 토지 재분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압력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여겨졌다.[25] 녹색 혁명의 성공은 일반적으로 경작과 수확을 위한 기계 도입, 대규모 농업 기업의 신용 접근성(종종 외국 자본에 의존), 정부의 기반 시설 지원, 저임금 농업 노동력 확보 등에 달려 있었다.[26]

월리스 방문 후 8년 만에 멕시코는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처음으로 식량을 수입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20년 만에 옥수수 생산량은 3배, 밀 생산량은 5배로 증가했다.[27] 1943년 밀 수요의 절반을 수입에 의존했던 멕시코는 1956년 자급자족을 달성했고, 1964년에는 50만ton의 밀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28][120] 이러한 성과에 기여한 볼로그는 30년 후 약 20억 명을 기아에서 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29]

멕시코는 녹색 혁명의 지식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정부의 재정 지원과 자국 농학자들의 참여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멕시코 혁명 이후 정부는 아시엔다 시스템을 해체하고 에히도에 토지를 재분배하는 토지 개혁을 추진했다. 특히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 (1934–1940) 시기에 중부와 남부에서 토지 개혁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1940년대에는 농업 생산성이 눈에 띄게 감소하기도 했다.

노먼 볼로그의 야키 계곡과 차핑고 연구소 위치.


1941년 볼로그의 연구소가 설립된 후, 리처드 브래드필드(코넬 대학교), 폴 C. 망겔스도르프(하버드 대학교), 엘빈 찰스 스택만(미네소타 대학교) 등 미국 과학자들이 멕시코 농업을 조사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30] 1943년 멕시코 정부는 국제 농업 연구의 중심 기관이 될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 센터 (CIMMYT)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볼로그 연구 그룹의 성공을 바탕으로 1959년 비공식 국제 연구 기관으로 발전했고, 1963년 정식으로 CIMMYT가 되었다.

멕시코에서 농업은 일부 지역의 혁명 참여를 이끈 핵심 요인일 정도로 중요한 사회·정치적 문제였다. 동시에 에히도 농민들에게 생산성 향상 방법을 교육하는 등 기술적인 접근도 필요했다.[3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멕시코 정부는 소규모 에히도가 지배적이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기술 혁신을 통한 농업 발전을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은 멕시코의 식량 자급을 달성하고, 냉전 시대의 사회 불안과 공산주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멕시코 정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멕시코 농업 프로그램 (MAP)을 만들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멕시코의 성공 사례는 라틴 아메리카 다른 지역과 아프리카, 아시아로 녹색 혁명이 확산되는 데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새로운 품종의 옥수수, 콩, 밀은 비료, 살충제와 같은 추가 투입물의 사용과 체계적인 경작 방식을 통해 높은 수확량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과학적 방식에 회의적이거나 적대적이었던 많은 멕시코 농부들도 점차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32] 그러나 새로운 종자, 비료, 합성 살충제, 관개 시설 등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는 것은 소규모 농민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또한 살충제 살포는 농민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었고,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수로를 오염시키는 등 환경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33]

멕시코 실험에 참여했던 에드윈 J. 웰하우젠은 초기 성공 요인으로 질병 저항성, 환경 적응성, 비료 반응성이 뛰어난 고수확 품종 개발, 토양 관리 개선, 적절한 비료 사용, 잡초 및 해충 통제, 그리고 "투입 비용 대비 생산물 가격의 유리한 비율" 등을 꼽았다.[34]

2. 3. 필리핀에서의 IR8 쌀 개발

1960년 필리핀 대통령 카를로스 P. 가르시아 행정부 시기, 필리핀 공화국 정부는 포드 재단 및 록펠러 재단과 협력하여 국제 쌀 연구소(IRRI)를 설립했다. IRRI는 1962년 디지우겐(Dee-Geo-woo-gen)과 페타(Peta) 품종 간의 교배를 시작했으며, 1966년 그 결과 중 하나로 새로운 고수확 품종인 IR8 쌀이 개발되었다.[121][122]

당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행정부는 IR8 쌀의 보급을 마사가나 99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삼아 추진했다.[35][123] IR8은 높은 수확량을 내기 위해 비료살충제 사용이 필수적이었지만, 전통 품종에 비해 월등히 많은 생산량을 보였다. 이로 인해 필리핀의 연간 쌀 생산량은 IR8 보급 후 20년 동안 370만 톤에서 770만 톤으로 크게 증가했다.[36][124]

IR8 도입으로 필리핀은 19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쌀 수출국이 되기도 했으나,[37][125] 1971년 병해충 발생으로 다시 수입국으로 전환되었다.[126] 유엔 식량 농업 기구의 데이터에 따르면 1966년부터 1986년까지 필리핀의 쌀 수입량(약 2,679,000 미터톤)은 수출량(약 632,000 미터톤)을 크게 상회했다.[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량 증대 노력은 계속되어 1978년에는 쌀 자급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127]

그러나 마사가나 99 프로그램은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신용 제도는 부유한 지주들에게만 유리하게 운영되어 가난한 농민들은 오히려 빚에 시달리게 되었다.[39] 또한, 이 프로그램이 정치적 후원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40][41][42] IR8 재배를 위한 농약의 대량 사용은 논의 생물 다양성 감소라는 환경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여 이후 병해충에 강한 IR36과 같은 품종들이 개발되어 보급되었다.

2. 4. 인도에서의 시작

1961년, 노먼 볼로그는 당시 인도 농업부 장관의 고문이었던 M. S. 스와미나탄 박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했다. 당시 인도는 심각한 기근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인도의 곡물 독점 기업들이 부과한 관료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드 재단과 인도 정부는 협력하여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 센터(CIMMYT)로부터 밀 종자를 도입했다. 인도 정부는 물 공급이 안정적이고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평원 중 하나인 인더스 평원이 있으며, 농업 성공의 역사를 가진 펀자브 주를 새로운 작물을 시험할 첫 번째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후 인도는 식물 육종, 관개 시설 개발, 농약 구입 자금 지원 등을 포함하는 자체적인 녹색 혁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43][128]

밀 도입과 더불어 인도는 곧바로 국제 벼 연구소(IRRI)에서 개발한 IR8 벼 품종을 채택했다.[44] 1968년, 인도의 농학자 S.K. 데 다타는 IR8 품종이 비료 없이 재배해도 헥타르당 약 5톤, 최적의 조건에서는 헥타르당 거의 10톤에 달하는 수확량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45][129] 이는 전통적인 벼 품종 수확량의 10배에 달하는 놀라운 결과였다. IR8은 아시아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기적의 쌀"이라고 불렸고, 이후 병충해에 더 강한 반왜소 IR36 품종 개발의 바탕이 되었다.

녹색 혁명 도입 이전인 1960년대에 인도의 벼 수확량은 헥타르당 약 2톤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헥타르당 6톤까지 증가했다. 쌀 생산 비용 역시 크게 낮아져, 1970년대에는 톤당 약 550USD였던 것이 2001년에는 톤당 200USD 미만으로 떨어졌다.[46]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쌀 생산국 중 하나로 발돋움했으며, 2006년에는 약 450만ton의 쌀을 수출하는 주요 쌀 수출국이 되었다.[130] 한때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인도의 대규모 기근은 녹색 혁명 도입 이후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2. 5. 중국의 녹색 혁명

중국의 농업도 참고할 수 있다.

중국의 크고 증가하는 인구는 식량 생산량, 특히 쌀 생산량 증대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만들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공산당은 농업 개발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정부는 전통적인 작물 생산 방식과 생물학적 해충 방제법을 활용하는 동시에, 현대 기술과 과학을 도입하고, 인구를 위한 식량 비축, 고수율 종자 품종 개발, 다모작 실시, 관개 시설 통제, 식량 안보 보호 등에 집중하여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47] 이러한 노력은 1950년 토지 개혁법 시행으로 시작되었는데, 이 법은 사유 토지 소유를 폐지하고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중국의 녹색 혁명은 멕시코, 필리핀, 인도, 브라질 등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의 "녹색 혁명"과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독자적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의 방식은 급증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농업 연구 지원, 농민의 지식과 경험 활용, 초기 국제 연구 결과 참고, 자연 친화적인 해충 방제 및 기타 여러 비산업적 농업 관행을 특징으로 한다. [48]

특히 생산성이 높은 잡종 벼 개발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은 위안룽핑이다. 그는 야생 벼 품종과 기존 품종을 교배하는 연구를 통해 잡종 벼 개발에 성공했으며, 이 공로로 "잡종 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고[49] 중국 내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았다.[50] 중국의 쌀 생산량 증가는 국가 식량 안보 목표 달성에 기여했으며, 오늘날 중국은 주요 쌀 수출국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최근 몇 년간 관개를 위해 지하수를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대수층이 고갈되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비료의 광범위한 사용은 온실 가스 배출량 증가로 이어졌다.[51] 중국은 경작 가능한 토지 면적을 크게 확장하지는 않았지만, 단위 면적(ha)당 높은 수확량을 통해 필요한 식량 안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52] 녹색 혁명의 성과는 빈곤 감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1979년에는 4억 9천만 명의 중국인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했으나, 2014년에는 그 수가 8천 2백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한때 중국 인구의 절반이 기아와 빈곤에 시달렸지만, 2014년에는 그 비율이 6%까지 감소했다.

2. 6. 브라질의 농업 혁명

1960년대 이전, 노먼 볼로그는 브라질 내륙의 광활한 세라도 지역 토양이 너무 산성이 강하고 영양분이 부족하여 농작물 재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토양의 산성도를 낮추기 위해 엄청난 양의 석회(곱게 간 백악 또는 석회석)를 토양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은 수십 년간 이어졌고, 1990년대 후반에는 매년 1400만ton에서 1600만ton의 석회가 브라질 농경지에 살포되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그 양이 2500만ton까지 늘어났는데, 이는 1ha당 약 5ton에 달하는 양이다.

이러한 토양 개량의 결과, 브라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두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대두는 동물 사료로도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브라질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대두는 브라질이 세계 최대의 소고기 및 가금류 수출국이 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53] 아르헨티나의 대두 생산량 급증 과정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54]

2. 7. 아프리카에서의 문제점

멕시코인도에서 성공한 녹색 혁명 프로젝트 개념을 아프리카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55]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만연한 부패, 정치적 불안정, 사회 기반 시설 부족, 정부의 의지 부족 등이 지적된다. 또한, 관개 용수 확보의 어려움이나 지역 내 다양한 지형 및 토양 조건과 같은 환경적 요인도 아프리카에서 녹색 혁명 확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1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긍정적인 시도와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 벼 센터 주도로 '네리카(NERICA, New Rice for Africa)'로 알려진 새로운 고수율 쌀 품종을 보급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네리카 품종은 일반적인 재배 환경에서도 기존 품종보다 약 30% 더 많은 수확량을 보이며, 소량의 비료와 기본적인 관개 시설만 갖추면 수확량을 두 배까지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농민 참여형 품종 선택(PVS, Farmer's participatory varietal selection) 방식을 통해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133] 아직 농민들에게 품종을 널리 보급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는 기니로, 네리카 품종이 전체 쌀 재배 면적의 16%를 차지하게 되었다.[56]

말라위에서는 2001년의 심각한 기근과 오랜 기간 지속된 기아 및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부터 "농업 투입 보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소규모 농민들에게 질소 비료와 옥수수 씨앗 구매를 위한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57] 프로그램 시행 첫해, 말라위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옥수수 수확량을 기록하며 수십 톤의 잉여 생산량을 확보하는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성과는 "기적"으로 불리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58] 하지만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2015년과 2016년에는 가뭄 등의 영향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40% 감소하는 등[59] 여전히 외부 요인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모잠비크에서는 2021년 옥수수 농민을 대상으로 한 임시 보조금 지원 효과를 분석한 무작위 대조 시험 결과, 녹색 혁명 기술(개량 종자, 비료 등)의 도입이 단기적 및 장기적으로 농업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60] 이는 적절한 지원 정책이 동반될 경우 아프리카에서도 녹색 혁명 기술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8. 국제 농업 연구 협의 그룹 (CGIAR)

1970년 노먼 볼로그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해, 재단 관계자들은 상설 사무국 아래에 전 세계 농업 연구 센터 네트워크 설립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더욱 발전했으며, 1971년 5월 19일 식량 농업 기구(FAO), 국제 농업 개발 기금(IFAD), 유엔 개발 계획(UNDP)의 공동 후원으로 국제 농업 연구 협의 그룹(CGIAR)이 설립되었다. CGIAR는 이후 전 세계에 많은 연구 센터를 추가했으며, 2008년 기준으로 15개의 연구 센터를 산하에 두었다.

CGIAR는 1980년대부터 녹색 혁명 방법론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주로 기부 기관들의 압력이나 녹색 혁명 방식 강요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61][131] 이에 따라 농업생태계 분석 및 농업 시스템 연구와 같은 방법들이 농업에 대한 보다 전체적인 관점을 얻기 위해 채택되었다.

3. 농업 생산 및 식량 안보

2012년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에 실린 연구 검토에 따르면, 녹색 혁명은 광범위한 빈곤 감소에 기여하고 수백만 명의 기아를 막았으며, 수천 헥타르의 토지가 농업 경작지로 전환되는 것을 방지했다.

녹색 혁명의 핵심은 기존 재래 품종의 한계를 극복한 고수확 품종(High Yield Varieties, HYVs)의 개발과 보급이었다. 재래 품종은 일정량 이상의 비료를 주면 줄기가 약해 쓰러지기 쉬워(도복) 오히려 수확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키가 작은 특성(반왜성)을 도입한 품종들이 개발되었다. 대표적으로 멕시코의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 센터(CIMMYT)에서 개발된 단간(短稈, 키 작은) 품종과 필리핀의 국제 쌀 연구소(IRRI)에서 개발된 IR8 벼 품종 등이 있다. 이 품종들은 비료를 많이 주어도 잘 쓰러지지 않아 안정적인 다수확을 가능하게 했다.

고수확 품종 개발 외에도 관개 시설 정비, 농약 등을 이용한 병해충 방제 기술 향상, 농기계 보급을 통한 농작업의 기계화 등도 녹색 혁명에 기여한 중요한 요인이었다.[114]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이라는 용어는 1968년 미국 국제 개발처(USAID)의 윌리엄 고드가 처음 사용했으며,[114] 록펠러 재단과 포드 재단, 그리고 여러 개발도상국 정부가 녹색 혁명의 확산에 참여했다.[115]

녹색 혁명 덕분에 1960년대 중반까지 우려되었던 아시아의 식량 위기는 해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요 증가를 넘어서는 공급 증가로 식량 안보가 확보되었다. 또한 곡물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면서 도시 노동자를 비롯한 소비자, 특히 식비 지출 비율이 높은 빈곤층이 큰 혜택을 보았다.[116] 일부에서는 곡물 가격 하락이 경작지 확대를 위한 산림 벌채 유인을 줄여 환경 보전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117] CIMMYT에서 다수확 품종 개발을 이끌며 녹색 혁명에 크게 기여한 노먼 볼로그는 역사상 어떤 인물보다 많은 생명을 구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지역적으로 보면, 특히 아시아에서 쌀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단위 면적당 수확량 증대가 주된 원동력이었다.[118] 남아시아는 동남아시아보다 녹색 혁명 도입이 늦었지만, 1980년대 이후 수확량이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118]

3. 1. 기술 개발

녹색 혁명은 이미 존재했지만 주로 산업화된 국가에서만 사용되던 기술들을 개발도상국으로 확산시킨 과정이었다. 이 기술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현대적인 관개, 살충제, 합성 질소 비료 등을 통해 작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재배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잡종 육성을 포함한 과학적 육종법을 통해 작물 품종 자체를 개량하는 기술이다. 녹색 혁명에서 개발된 새로운 기술 중 핵심은 "기적의 씨앗"이라 불리는 다수확 품종(High Yield Varieties, HYVs)의 생산이었다.[134]

멕시코는 녹색 혁명의 '요람'으로 불린다.[17] 그 시작은 1940년 미국 부통령 당선자였던 헨리 A. 월리스의 멕시코 방문이었다. 그는 멕시코의 낮은 옥수수 생산성에 주목하고,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멕시코의 기후에 맞는 옥수수와 밀 품종 개량을 위한 농업 연구소 설립을 추진했다. 이 연구 책임자로 젊은 농학자 노먼 볼로그가 임명되었다.[19][20] 이 프로젝트는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 당시 멕시코 대통령과 미국 정부,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의 지지를 받았다.[21] 멕시코 정부는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고 늘어나는 도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농업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삼았으며,[22][24] 특히 관개 시설을 갖춘 지역에서의 생산성 향상에 집중했다. 1943년 멕시코 정부는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 센터(CIMMYT)의 전신이 되는 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는 국제적인 농업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볼로그와 연구팀은 멕시코에서 키가 작아 비료 효과를 높이고 쓰러짐에 강한 반왜성 유전자를 도입한 품종 개발에 성공했다. 이러한 멕시코 계통의 밀 품종은 이후 다른 나라로 확산되어 밀 생산량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멕시코는 이러한 노력 덕분에 1956년 밀 자급자족을 달성했고, 1964년에는 50만 톤의 밀을 수출하게 되었다.[28]

멕시코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록펠러 재단과 포드 재단은 벼 품종 개량에도 주목했다. 1960년 필리핀 정부와 협력하여 국제 쌀 연구소(IRRI)를 설립했다. IRRI에서는 1966년 대만의 재래종 '디지우겐(Dee-Geo-woo-gen)'과 인도네시아 품종 '페타(Peta)'를 교배하여 개발한 다수확 품종 IR8을 발표했다.[121][122] IR8은 "기적의 쌀"이라 불리며 아시아 전역으로 빠르게 보급되었다.

이러한 다수확 품종 개발 외에도 관개 시설 확충, 병해충 방제 기술 향상, 농기계 보급 등도 녹색 혁명의 중요한 기술적 요소였다.[114]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이라는 용어는 1968년 미국 국제 개발처(USAID)의 윌리엄 고드가 처음 사용했다.[114]

기술 개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1971년에는 세계은행, FAO, 국제 농업 개발 기금(IFAD), 유엔 개발 계획(UNDP) 등의 후원으로 국제 농업 연구 협의 그룹(CGIAR)이 설립되었다. CGIAR는 전 세계에 연구 센터를 설립하여 녹색 혁명 기술의 개발과 보급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에드윈 J. 웰하우젠은 녹색 혁명 초기 성공 요인으로 질병 저항성, 환경 적응성, 비료 반응성이 높은 품종 개발, 토양 관리 개선, 적절한 비료 사용, 잡초 및 해충 방제, 그리고 투입 비용 대비 생산물 가격의 유리한 비율 등을 꼽았다.[34] 이러한 기술 개발 덕분에 1960년대 중반 우려되었던 아시아의 식량 위기는 피할 수 있었고, 늘어나는 수요 이상으로 식량 공급이 증가하면서 식량 안보가 확보되었다. 또한 곡물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하여 도시 노동자를 비롯한 소비자, 특히 식비 지출 비율이 높은 빈곤층이 큰 혜택을 보았다.[116] 일부에서는 곡물 가격 하락이 경작지 확장을 위한 산림 벌채 유인을 줄여 환경 보전에 기여했다는 해석도 있다.[117] 녹색 혁명을 이끈 공로로 노먼 볼로그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3. 1. 1. 다수확 품종

녹색 혁명의 새로운 기술 개발은 새로운 품종의 밀 생산이었다. 농학자들은 옥수수, , 의 다수확 품종(High Yield Varieties, HYVs)을 육종했다. 다수확 품종은 다른 품종보다 질소 흡수 능력이 더 높다. 질소를 과다 흡수한 곡물은 일반적으로 도복(倒伏), 즉 수확 전에 쓰러지기 때문에, 반왜성 유전자가 이들의 게놈에 육종되었다. 일본 농학자 이나즈카 곤지로가 개발하여 세실 샐먼이 워싱턴 주립 대학교의 오빌 보겔에게 보낸 일본의 왜성 밀 품종인 노린 10 밀은 녹색 혁명 밀 품종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아시아의 식량 위기와 함께 다수확 품종 쌀의 보급이 크게 증가했다.[62]

"녹색 혁명의 아버지"인 노먼 볼로그 박사는 튼튼하고 굳건한 줄기를 가진 녹병 저항성 품종을 육종하여, 높은 수준의 비료 사용에도 극심한 기상 조건에서 작물이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 센터(CIMMYT)는 이러한 육종 프로그램을 수행했으며, 멕시코와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다수확 품종의 보급을 도왔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이들 국가의 수확량이 두 배로 증가했다.

식물 과학자들은 다수확과 관련된 몇 가지 매개변수를 파악하고 식물 키와 분얼수를 제어하는 관련 유전자를 확인했다.[63] 분자 유전학의 발전과 함께, ''애기장대'' 유전자(GA 20-옥시다제,[64] ''ga1'',[65] ''ga1-3''[66]), 밀 키 감소 유전자(''Rht'')[67] 및 쌀 반왜성 유전자(''sd1'')[68]를 담당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클로닝되었다. 이들은 지베렐린 생합성 유전자 또는 세포 신호 전달 구성 요소 유전자로 확인되었다. 돌연변이 배경에서 줄기 성장은 현저히 감소하여 왜성 형질을 나타낸다. 더 짧은 식물은 본질적으로 기계적으로 더 안정적이므로 줄기에 대한 광합성 투자가 극적으로 감소한다. 동화물질은 곡물 생산으로 재분배되어, 특히 화학 비료가 상업적 수확량에 미치는 영향을 증폭시킨다.

다수확 품종은 적절한 관개, 살충제 및 비료가 있는 경우 기존 품종보다 현저히 우수하다. 이러한 투입물이 없는 경우 기존 품종이 다수확 품종보다 더 나은 성능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일부 저자는 다수확 품종의 명백한 우월성에 대해 기존 품종과의 비교뿐만 아니라, 다수확 품종과 관련된 단일 경작 시스템과 기존 품종과 관련된 다원 경작 시스템을 대조하여 이의를 제기했다.[69]

재래 품종은 일정량 이상의 비료를 투입하면 수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한다. 이는 재래 품종의 경우 도복이 일어나기 쉬워 비료의 증투가 수량 증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된 주요 고수량 품종(HYVs)으로, 멕시코 멕시코시티 교외에서 미국의 농학자인 보얼로그 등에 의해 개발된 멕시코 계통 단간(短稈, 곡물의 줄기가 짧은 것. 간(稈)은 마디가 있고 안에 공간이 있는 줄기를 말한다) 품종군이나, 필리핀 마닐라 교외의 국제 쌀 연구소(IRRI)에서 개발된 벼 품종의 IR8 등이 있다. 이 단간 품종은 식물체 전체의 키가 작아지지만 이삭의 길이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성질(반왜성)을 도입한 것이다. 반왜성의 도입으로 작물이 도복하기 어려워져 시비에 따른 수량 증가와 기후 조건에 영향을 받기 어려운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해졌다. 고수량 품종은 근년에는 근대 품종이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고수량 품종이라고 불렸지만, 생산 환경에 관계없이 항상 높은 수량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66년에 공개된 반왜성 벼 품종 IR8의 육종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62년에 반왜성의 대만 재래 품종 저각오첨(Dee-Geo-Woo-Gen)과 키가 큰 인도네시아 품종 페타(Peta)를 인공수분에 의해 교배하여 130립의 F1 종자가 얻어졌다. F1 식물체의 키는 모두 컸다. 이 이후의 세대는 인공수분을 하지 않고 육종되었다. F1 식물체에서 약 10,000립의 F2 종자가 얻어졌다. F2 식물체의 약 1/4이 반왜성이었고, 그것들만 남겨지고 키가 큰 것은 폐기되었다. 반왜성 식물체의 분리비로부터 반왜성은 1 유전자 지배의 열성 형질임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열성호모접합으로 반왜성 형질은 고정되었지만, 다른 형질은 고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자가수분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는 후대를 취하여 다른 형질도 고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F2 식물체에서 얻어진 다수의 F3 종자 유래의 다수의 F3 식물체에서 우량한 298 계통이 선발되었다. 이 298 계통에서 각각 F4 종자가 얻어졌다. F4 식물체 중에서 제288계통의 3번째 식물체 IR8-288-3이 선발되었고, 거기에서 F5 종자가 얻어졌다. 이 F5 식물체가 단순히 IR8이라고 불리는 품종의 근원이 되었다.[135][136][137] 이 육종 과정을 통해 IR8에서 다양한 형질이 고정되었다.

쌀이나 밀의 근대 품종은 F1 품종이라는 오해가 일부 있지만, 옥수수와는 달리 쌀이나 밀의 근대 품종에는 F1 품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138] 옥수수처럼 웅화와 자성 화가 분리된 작물과 달리, 쌀이나 밀처럼 양성화로 자가 수분성이 강하고, 게다가 종자가 이용되는 작물의 경우, F1 품종의 종자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웅성 불임(male sterility) 계통, 웅성 불임 계통의 유지 계통(maintainer), 웅성 불임 형질로부터의 임성 회복 계통(restorer)의 품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계통에서는 거의 모든 개개의 유전자좌가 고도로 동형 접합하고, 즉 고도로 순화되어 형질이 고정화되어 있을 필요가 있다. 한편, 고수량, 병해충 내성을 부여하기 위해 교배하고, 그러한 형질을 고정하는 육종 과정에 있는 계통(즉, 아직 이형 접합의 유전자좌가 많은 상태)에 웅성 불임 형질이나 임성 회복 형질을 개별적으로 부여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쌀이나 밀이 F1 품종이었다면, 반 왜성 형질은 열성 동형 접합으로만 발현되므로, 종자친과 화분친 모두 반 왜성이 아니면 안 된다. 앞서 언급한 쌀의 IR8의 육종 과정처럼, 이러한 F1 세대를 사용하여 자가 수분이나 되풀이 교배를 반복하여, 그것들에 의해 형질이 고정된 후대에서, 선발된 것이 근대 품종이 되었다.

'''다수확 품종의 특징'''

대부분의 재래 품종은 잡초 등과의 경쟁에 강하고, 비료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어느 정도 생육을 보이며 생육 기간이 길고, 키가 큰 것이었다.[139] 그러나 시비, 제초 등의 재배 관리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많은 비료 하에서 생산성이 높아지도록 비료에 대한 반응성이 높고, 재배 관리의 노력이 적게 드는 생육 기간이 짧은 품종이 요구되었다.[139] 그래서 농학자들이 옥수수, 밀, 벼로 만들어낸 계통을 "고수량 품종군"(HYVs)이라고 부른다. 이들 품종군은 다음과 같은 형질을 가지고 있다.

  • '''내비성(耐肥性)''': 재래 품종에 비해 고수량 품종군은 비료 성분인 질소 화합물(암모니아태 질소, 질산태 질소)의 흡수 능력이 증가했다.
  • '''반왜성(半矮性)''': 키가 큰 곡물은 수확 전 몬순이나 태풍으로 도복 피해가 다발하므로, 고수량 품종군의 게놈 안에,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반왜성 유전자가 도입되어 있다. 밀의 녹색 혁명 품종 개발에는, 일본의 반왜성 품종 노린 10 밀이 사용되었다. IRRI에서 개발되어 처음 널리 보급된 벼의 고수량 품종 IR8은, 인도네시아 품종 페타(Peta)와 대만 재래 품종·저각오첨(Dee-Geo-Woo-Gen)의 교배를 통해 육성되었다.[139][140][141] 분자 유전학의 발전에 따라, 왜성에 대응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지베렐린의 생합성계나 정보 전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동일시되어, 클로닝되고 있다. 그 예로는, 애기장대의 유전자(''GA5''[142], ''ga1''[143], ''ga1-3''[144]), 밀의 ''Rht'' 유전자[145], 벼 저각오첨의 ''sd1'' 유전자[141]가 있다. 이들 돌연변이 유전자를 동형 접합으로 가짐으로써 줄기의 성장은 현저하게 단축되어 왜성표현형이 된다. 키가 작은 식물체는 물리적으로 더 안정적이며, 줄기에 공급되는 광합성 산물량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동화 산물은 곡립 생산을 향해 전환되게 되며[139], 상업적인 수확을 위한 화학 비료의 효과가 특히 증가한다.
  • '''이삭 무게와 이삭 수''': 벼의 다수확과 관련하여, 이삭 무게가 무겁고 다수성으로 이삭 수가 많은 것[139]이 중시되어 육종되었다.
  • '''초형(草型)''': 수광량(受光量)을 늘리기 위해 직립엽(直立葉)인 것이 중시되었다.[139] 직립엽은, 특히 다비 밀식 등에서, 개체군 내로의 빛의 투입을 크게 하여 개체군 광합성 능력을 증대시킨다.
  • '''꽃눈 분화의 비감광성(非感光性)''': 꽃눈 분화와 관련하여 일장 불감수성인 것에 의해 생육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므로, 이러한 형질도 고려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벼 재래 품종과 달리, 벼의 근대 품종은 출수와 관련하여 비감광성이며, 조생(早生)이다.[139] 과거, 아시아 몬순 지대에서는, 6-11월경의 우기에 긴 생육 기간(160-200일)을 거쳐 벼를 재배했다. 이 경우의 재래 품종과 야생형 벼는, 9월이 되어 일장이 12시간 이하가 된 후에 꽃눈이 분화해 오는 감광성(광주성)이 강한 단일 식물이다. 그러나, 생육 기간이 긴 품종은 다비 조건 하에서는 영양 생장하여 도복해 버린다. 게다가, 관개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건기가 수량이 더 많다.[139] 그래서, 감광성이 낮고, 생육 기간이 짧아지도록 육종이 진행되었다. 그 때문에, 우기작뿐만 아니라, 정비된 관개 시설과 근대 품종을 사용하면 건기작도 가능해졌으며,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삼기작도 행할 수 있게 되었다.[118]


이러한 형질의 결과, 고수량 품종군은 적절한 관수, 농약, 비료가 시비될 때, 전통 품종보다 상당히 다수확이 된다. 만약 이러한 시비가 없다면, 전통 품종이 더 다수확이 될 수도 있다.

'''근대 품종의 세대 구분 (벼)'''

근대 품종은 단일 품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개발되어 온 품종군을 의미한다. 벼의 경우, 농업경제학자 오츠카 케이지로 등에 따르면, 근대 품종은 다음과 같이 세 세대로 크게 분류된다.[147][148]

세대개발 시기주요 특징대표 품종비고
제1세대1960년대 후반병해충이 없고 관개 시설이 잘 갖춰진 환경에서 높은 수확량 발휘.IR8 ("기적의 쌀")병충해에 약하고 환경 적응성이 낮다는 단점.[118] 잠재 수확량은 후속 세대와 큰 차이 없음.
제2세대1970년대 초반 이후병충해 저항성 부여. 수량 안정화 및 농가 소득 안정화 기여.IR36 (1976년 개발)제1세대 품종을 교배 친으로 활용.
제3세대이후각 지역의 다양한 생산 환경 고려. 식미(食味) 개선 품종 포함.각국 시험 연구 기관 개발 품종보급 지역 제한적인 경우 많음. 제2세대 품종을 교배 친으로 활용.



1961년부터 1985년 사이에 개발도상국의 곡물 생산량은 최소 2배 이상 증가했다.[149] 벼·옥수수·밀의 수확량은 그 기간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149][150] 아시아의 쌀 생산 증가는 관개·비료·종자 개발에 대체로 동일하게 기인한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149] 수확량 증가의 주된 원인은 고수확 품종의 보급과 그에 따른 비료의 증투이며, 관개 면적의 증대는 부차적이라는 견해도 있다.[151]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와 같이 이른 시기부터 근대 품종을 도입한 국가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수확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최근의 근대 품종 III이 근대 품종 I이나 근대 품종 II와 비교하여, 수확성에서 큰 우위를 가지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된다.[118] 늦게 녹색 혁명이 시작된 베트남이나 남아시아에서는, 1990년대에도 수확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녹색 혁명의 잠재력이 소진되어 수확량의 정체 경향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152]

녹색 혁명의 결과로 농업 생산물이 증가하는 동안, 과정에 투입되는 에너지(즉 곡물 생산에 소비되는 에너지) 또한 더 큰 비율로 증가하여[153] 생산되는 곡물과 투입되는 에너지의 비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녹색 혁명의 기술은 또한 화학 비료·농약(제초제 포함)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 그 중에는 화석 연료에서 개발되어야 하는 것도 있으며, 농업을 더욱 석유 제품에 의존하게 만들었다.[154] 석유 피크설 지지자들은, 미래의 석유·가스 생산의 감소가 식량 생산의 저하나, 더 나아가 맬서스 학파가 말하는 파국으로까지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155]

3. 2. 생산량 증가

1961년 이후 최빈국들의 밀 수확량, 헥타르당 킬로그램 단위


녹색 혁명은 전 세계적인 식량 생산량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1961년부터 1985년 사이 개발도상국의 곡물 생산량은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70][149] 쌀, 옥수수, 밀의 단위 면적당 수확량(수량) 역시 꾸준히 증가했다.[70][149][150] 한 2021년 추정에 따르면, 녹색 혁명은 1965년부터 2010년까지 전 세계 농작물 수확량을 44% 증가시켰다. 이러한 생산량 증가는 특히 아시아 지역의 쌀 생산에서 두드러졌는데, 이는 관개 시설 확충, 비료 사용 증가, 그리고 새로운 품종 개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70][149]

생산량 증가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고수량 품종(High Yield Varieties, HYVs)의 개발과 보급이었다. 기존의 재래 품종은 비료를 많이 주면 키가 너무 자라 쓰러지기 쉬워(도복) 오히려 수확량이 감소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멕시코의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 센터(CIMMYT)에서는 노먼 볼로그 등을 중심으로 키가 작은 밀 품종(단간종)을 개발했고, 필리핀의 국제 쌀 연구소(IRRI)에서는 IR8과 같은 키 작은 벼 품종을 개발했다. 이 품종들은 식물 전체의 키는 작지만 이삭의 길이는 유지하는 반왜성 특징을 가지고 있어, 비료를 많이 주어도 잘 쓰러지지 않고 수확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114] 또한, 관개 시설 정비, 농약을 이용한 병해충 방제 기술 향상, 농기계 보급을 통한 농작업의 기계화 등도 생산량 증대에 기여했다.[114]

각국의 사례를 보면 생산량 증가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 멕시코: 녹색 혁명의 발상지로 불리는 멕시코에서는 20년 만에 옥수수 생산량이 3배, 밀 생산량은 5배 증가했다.[27] 1943년 밀 수요의 절반을 수입에 의존했지만, 1956년 자급자족을 달성했고 1964년에는 50만ton의 밀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28]
  • 필리핀: 1966년 IR8 품종이 보급된 이후 20년간 연간 쌀 생산량이 370만ton에서 770만ton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36][124] 이로 인해 필리핀은 1970년대에 처음으로 쌀 수출국이 되기도 했으나,[37][125] 병충해 등의 문제로 다시 수입국이 되기도 했다.[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는 쌀 자급을 달성했다.[127]
  • 인도: 1960년대 초 기근 위기에 직면했던 인도는 펀자브 주를 시작으로 녹색 혁명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43][128] IR8 벼 품종 도입 이후 1960년대 헥타르당 약 2톤이었던 쌀 수확량은 1990년대 중반 헥타르당 6톤까지 증가했다.[45][129] 인도는 세계적인 쌀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발돋움했으며, 2006년에는 약 450만ton을 수출했다.[130] 녹색 혁명 이후 인도는 심각한 기근을 겪지 않게 되었다.
  • 동남아시아: 1950년 대비 쌀 생산량이 약 4.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확 면적은 1.8배 증가에 그쳤지만,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2.5배 증가하며 생산량 증대를 이끌었다.[118]
  •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보다 녹색 혁명 도입이 늦었지만, 1980년대 이후 수확량이 빠르게 증가했다.[118]


이러한 생산량 증가는 식량 위기 해소와 식량 안보 확보에 크게 기여했으며, 곡물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특히 식비 지출 비중이 높은 빈곤층에게 혜택을 주었다.[116] 1970년대 톤당 약 550USD였던 쌀 가격은 2001년 톤당 200USD 미만으로 떨어졌다.[46] 또한, 경작지 확대를 위한 산림 벌채 유인을 줄여 환경 보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117]

하지만 녹색 혁명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는 동안, 비료, 농약, 농기계 등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에너지는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71][153] 이로 인해 생산된 곡물 대비 투입 에너지의 비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화석 연료에 대한 농업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72][154] 또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일찍 근대 품종을 도입한 국가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수확량 증가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18][152]

3. 3. 식량 안보에 대한 영향

세계적인 식량 안보에 대한 녹색 혁명의 영향은 식량 공급 체계와 관련된 복잡성 때문에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녹색 혁명은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을 극적으로 증가시켜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녹색 혁명의 핵심은 노먼 볼로그 등이 개발한 고수확 품종(High Yield Varieties, HYVs)의 도입이었다. 기존의 재래 품종은 비료를 많이 주면 키만 커지고 쓰러지기 쉬워(도복) 생산량 증가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고수확 품종은 키가 작은 특성(반왜성)을 가지도록 개량되어 비료를 많이 주어도 잘 쓰러지지 않고 곡물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114] 대표적인 예로 멕시코에서 개발된 단간 밀 품종과 필리핀의 국제 쌀 연구소(IRRI)에서 개발된 IR8 벼 품종이 있다. 이러한 품종들은 충분한 물(관개), 비료, 농약 등 현대적인 농업 기술과 결합될 때 최상의 생산성을 보였다.[114]

녹색 혁명의 동력은 비료(주로 천연가스 기반), 살충제(석유 기반), 그리고 관개 및 농기계 운영에 필요한 탄화수소 연료 등 상당 부분 화석 연료에 의존했다.[73][74] 특히 합성 질소 비료의 개발은 전 세계 인구 증가를 뒷받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현재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합성 질소 비료 덕분에 식량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75][76]

녹색 혁명으로 인한 생산량 증가는 막대했다. 1950년부터 1984년까지 세계 곡물 생산량은 250% 증가했으며,[156] 1961년부터 1985년 사이 개발도상국의 곡물 생산량은 최소 2배 이상 증가했다.[149] 인도의 경우, 연간 밀 생산량이 1960년대 1,000만 톤에서 2006년 7,300만 톤으로 급증했다.[78][156] 동남아시아에서는 1950년 대비 쌀 생산량이 약 4.5배 증가했는데, 이는 주로 단위 면적당 수확량 증가 덕분이었다.[118]

이러한 생산성 향상은 세계 인구가 녹색 혁명 시작 이후 약 50억 명 증가[77]하는 동안 광범위한 기근을 막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80]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녹색 혁명 이전보다 하루 평균 약 25%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었다.[70][149] 또한, 1960년대 중반까지 우려되었던 아시아의 식량 위기를 해소했을 뿐 아니라, 곡물 가격 하락을 유도하여 특히 식비 지출 비중이 높은 도시 빈곤층에게 큰 혜택을 주었다.[116] 일부에서는 곡물 가격 하락이 경작지 확대를 위한 산림 벌채 유인을 줄여 환경 보전에도 기여했다는 해석도 있다.[117]

녹색 혁명을 이끈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노먼 볼로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3. 3. 1. 맬서스주의 비판

볼로그는 녹색 혁명에 대한 일부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지만, 모든 비판에 동의하지는 않았다.[165] 그는 자신의 연구가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녹색 혁명을 비판하는 로비스트들에 대해 볼로그는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그는 일부 환경 운동가들의 진정성은 인정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개발도상국의 현실적인 어려움, 특히 기아 문제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채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볼로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구의 환경 로비스트 중에는 귀 기울여야 할 성실한 노력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엘리트이며 굶주림의 고통을 맛본 적이 없고, 워싱턴이나 브뤼셀에 있는 아늑한 사무실에서 로비 활동을 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단 한 달이라도 개발도상국의 비참함 속에서 생활한다면, 그것은 내가 50년 이상 해왔던 일인데, 그들은 트랙터, 비료, 그리고 관개수로가 필요하다고 외칠 것이며, 고국의 상류 사회 엘리트가 이것들을 부정하려 한다는 것에 격분할 것이다.[166]


이는 식량 생산 증대를 통한 기아 문제 해결의 시급성과 현실적인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입장을 보여준다.

3. 3. 2. 기근



일부 비판은 일반적으로 맬서스주의 인구 원리의 변형을 포함한다. 이러한 우려는 녹색 혁명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으며,[82] 인류가 지속 가능한 수용 능력과 지구에 대한 생태적 요구와 관련하여 현재 인구 과잉 또는 오버슈트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맬서스 가설의 예상과는 달리 녹색 혁명은 인구 증가가 아닌 인구 증가 감소로 이어졌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 부족의 직간접적인 결과로 사망하지만, 맬서스의 더 극단적인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1798년 토머스 맬서스는 임박한 기아를 예측했다.[83] 1923년까지 세계 인구는 두 배로 증가했고, 1973년까지 다시 두 배로 증가했지만 맬서스의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맬서스주의자 폴 R. 에를리히는 1968년 저서 ''인구 폭탄''에서 "인도는 1980년까지 2억 명의 인구를 더 먹여 살릴 수 없을 것이며" "수억 명의 사람들이 어떤 긴급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굶어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83] 에를리히의 경고는 노먼 볼로그의 왜소 밀 품종 도입의 결과로 인도가 1974년 (6년 후) 곡물 생산에서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실현되지 않았다.[83]

그러나 볼로그는 인구 증가의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노벨 강연에서 그는 인구 상황을 냉정하게 이해하면서 식량 생산 개선을 반복적으로 제시했다. "녹색 혁명은 굶주림과 박탈에 대한 인간의 전쟁에서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인간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완전히 시행된다면 혁명은 향후 30년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서운 번식력 또한 억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녹색 혁명의 성공은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인구 괴물'의 규모와 위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인간은 잠재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저는 향후 20년 안에 무책임한 인구 증가의 길을 따라 스스로 파멸적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3. 3. 식단의 질

(작성할 내용 없음)

3. 3. 4. 정치적 영향

멕시코는 녹색 혁명의 '요람'이자 '무덤'으로 불려왔다.[17] 20세기 동안 두 개의 '혁명'이 멕시코 농촌을 변화시켰다: 멕시코 혁명 (1910–1920)과 녹색 혁명 (1940–1970).[18]

녹색 혁명의 시작은 1940년 미국의 부통령 당선자였던 헨리 A. 월리스의 장기간 방문이었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첫 두 임기 동안 미국 농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정부에 들어가기 전에는 작물 수확량을 크게 증가시키는 획기적인 옥수수 종자 교배 기술을 개발한 Pioneer Hi-Bred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멕시코의 빈약한 옥수수 수확량에 경악했다.[19] 월리스는 록펠러 재단이 멕시코에 건조한 기후에 적합한 옥수수와 밀을 교배하기 위한 농업 연구소를 설립하도록 자금을 지원하도록 설득했고, 그 책임자로 젊은 아이오와 농학자 노먼 볼로그를 고용했다.[20]

이 프로젝트는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 신임 멕시코 대통령, 미국 정부, 유엔,

3. 4. 사회경제적 영향

"녹색 혁명"은 1960년대 중반까지 우려되었던 아시아의 식량 위기를 해소하고, 수요 증가를 넘어서는 공급 증가를 통해 식량 안보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1961년부터 1985년 사이에 개발도상국의 곡물 생산량은 최소 2배 이상 증가했으며[149], 벼, 옥수수, 밀의 수확량은 꾸준히 늘어났다.[149][150] 곡물 가격의 장기적인 하락 추세는 도시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에게 큰 혜택을 주었으며, 특히 소비 지출에서 식량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빈곤층에게 그 효과가 뚜렷했다.[116] CIMMYT에서 다수확 품종 개발에 힘쓰며 녹색 혁명에 크게 기여한 볼로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또한, 곡물 가격 하락이 산림 벌채를 통한 경지 확장의 유인을 약화시켜 환경 보전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117]

그러나 녹색 혁명은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했다. 새로운 기술과 투입재(종자, 비료, 살충제, 물) 확보는 소규모 농민들에게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26][33] 살충제의 무분별한 사용은 농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며 수질 오염을 유발했다.[33] 녹색 혁명 기술은 화석 연료로 생산되는 화학 비료와 농약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농업의 석유 의존성을 심화시켰고[154], 이는 석유 피크 이론 지지자들 사이에서 미래 식량 생산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155] 농업 생산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에너지는 더 큰 비율로 증가하여 에너지 효율성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153]

일부 비평가들은 녹색 혁명의 주요 목표가 개발도상국에 식량을 제공하여 사회 안정을 도모하고 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려는 지정학적 목적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탐사 저널리스트 마크 도위는 포드 재단과 록펠러 재단이 이러한 지정학적 목표 아래 녹색 혁명을 지원했다고 지적했다.[90][91]
지역별 영향

  • 멕시코: 녹색 혁명의 '요람'으로 불리는 멕시코는 헨리 A. 월리스의 문제 제기와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농업 연구가 시작되었다.[17][19][20] 노먼 볼로그가 개발한 고수확 밀 품종 덕분에 1956년 밀 자급을 달성하고 1964년에는 수출국으로 전환했으며[28], 옥수수 생산량도 크게 증가했다.[27]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주로 관개 시설과 기계, 신용 접근성이 좋은 대규모 농업 기업에 집중되었고[26], 멕시코 토지 개혁으로 분배된 에히도 중심의 소농들은 상대적으로 혜택에서 소외되었다. 녹색 혁명은 식량 자급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토지 재분배 요구를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25]

  • 필리핀: 포드 재단과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국제 쌀 연구소(IRRI)가 설립되었고, 1966년 고수확 품종인 IR8 쌀이 개발되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부는 마사가나 99 프로그램을 통해 IR8 보급을 추진하여 20년 만에 쌀 생산량을 두 배 이상 늘렸다.[35][36] 필리핀은 20세기 처음으로 쌀 수출국이 되었지만[37], 실제로는 수입량이 수출량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다.[38] 마사가나 99 프로그램은 신용 접근성이 부유한 지주에게 편중되어 가난한 농부들이 빚에 시달리게 만들었고, 정치적 후원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39][40][41][42]
  • 인도: 1961년 노먼 볼로그의 방문 이후 펀자브 주를 중심으로 CIMMYT의 고수확 밀 종자가 도입되었고, 이후 IR8 벼도 도입되었다.[43][44] 인도는 자체적인 녹색 혁명 프로그램을 통해 관개 시설을 확충하고 비료 및 농약 사용을 지원했다.[43] 그 결과 1990년대 중반까지 벼 수확량이 헥타르당 2톤에서 6톤으로 증가했고, 쌀 가격은 크게 하락했다.[46] 인도는 세계적인 쌀 생산 및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 중국: 중국의 녹색 혁명은 미국의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었다. [48]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농업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토지 개혁, 전통 농업 방식과 현대 기술의 결합, 위안룽핑 주도의 잡종 벼 개발 등을 추진했다.[47][49] 이를 통해 식량 안보를 달성하고 빈곤을 크게 줄였으나, 관개를 위한 지하수 남용으로 대수층이 고갈되고 비료 과다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증가 등 환경 문제에 직면했다.[51]
  • 브라질: 1960년대부터 산성이 강하고 척박했던 내륙 세라도 지역에 막대한 양의 석회를 살포하여 토양을 개량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연간 1400만ton에서 1600만ton, 2003-2004년에는 2500만ton의 석회가 사용되었다.[53] 그 결과 브라질은 세계 2위의 대두 수출국이자 세계 최대의 소고기 및 가금류 수출국으로 부상했다.[53]
  •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는 녹색 혁명의 성공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만연한 부패, 정치적 불안정, 열악한 기반 시설, 정부의 의지 부족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55] 또한 관개 시설 부족, 다양한 지형과 토양 조건 등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아프리카의 새로운 쌀(NERICA) 품종 보급 노력이 있었으나 기니의 농업을 제외하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56] 말라위의 농업에서는 2005년 비료 및 종자 보조금 지원 프로그램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57][58], 이후 생산량 변동성을 보였다.[59] 모잠비크의 농업에서는 임시 보조금이 녹색 혁명 기술 채택과 수확량 증가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60]

수확량 증가세 둔화와 과제필리핀인도네시아와 같이 이른 시기에 근대 품종을 도입한 국가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수확량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118] 이는 후기에 개발된 근대 품종들이 초기 품종에 비해 수확성에서 큰 우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118] 늦게 녹색 혁명이 시작된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 등 남아시아 국가에서는 1990년대에도 수확량이 계속 증가했지만[118][119], 이들 국가 역시 장기적으로는 수확량 정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152]

이에 따라 1971년 세계은행, 식량 농업 기구(FAO), 국제 농업 개발 기금(IFAD), 유엔 개발 계획(UNDP)의 후원으로 설립된 국제 농업 연구 협의 그룹(CGIAR)과 같은 기관들은 녹색 혁명 방법론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고 새로운 생산성 향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는 농업생태계 분석 등 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61]

3. 5. 환경 영향

녹색 혁명은 식량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다양한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수확 품종 재배에는 다량의 화학 비료살충제, 충분한 관개가 필수적이었는데, 이는 토양수질 오염, 생태계 파괴로 이어졌다.

특히 멕시코 사례처럼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은 해충뿐 아니라 유익한 곤충과 토양 미생물까지 사멸시켜 지역 생태계를 교란하고 수로를 오염시켰으며, 농민과 주민의 건강을 위협했다.[33] 과도한 질소 비료 사용은 강력한 온실 가스인 아산화 질소 배출을 증가시키고 수질 오염을 유발했다.[97] 이러한 화학 물질 의존성은 농업 생산 시스템의 화석 연료 의존도를 높였고, 생산량 증가율보다 더 높은 비율로 에너지 투입량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153][154]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지적된다. 특정 고수확 품종 위주의 단일 경작이 확산되면서 지역 환경에 적응해 온 다양한 토착 품종이 사라지고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여 농업 생태계 전체가 특정 질병이나 환경 변화에 취약해졌다. 녹색 혁명이 농경지 확장을 억제하여 야생 생물 다양성 보존에 기여했다는 주장[92][117]도 있지만, 오히려 토지 황폐화와 토양 영양분 고갈로 새로운 산림을 개간하게 만들거나[93], 과거 농업에 부적합했던 지역까지 개발하면서 생물 다양성을 파괴했다는 반론[92]도 제기된다. 1992년 리우 회의에서는 농업 확장이 생물 다양성 손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문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꾸준히 나왔다. 지리학자 칼 O. 자우어는 녹색 혁명 방식의 식물 육종 기술이 멕시코 고유의 농업 자원과 문화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94], 2022년 유엔 식량 특별보고관 마이클 파크리는 산업적 농업과 수출 지향적 식량 정책이 온실 가스 배출과 생물 다양성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98]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역시 20세기 후반의 집중적인 농업이 토양 황폐화, 천연자원 손실, 기후 변화에 기여했으며, 농화학 물질의 과도한 사용, 비효율적인 물 사용,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고 평가했다.

결론적으로 녹색 혁명은 식량 위기 해결에 기여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적 부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3. 5. 1. 생물 다양성

녹색 혁명은 , , 옥수수 등 주요 작물의 고수확 품종 개발과 보급을 통해 식량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고수확 품종은 특정 환경 조건에서 최대의 수확량을 내도록 육종되었기 때문에, 재배 과정에서 많은 양의 비료살충제, 그리고 충분한 물 공급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단일 품종 위주의 농업 방식은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어 온 다양한 토착 품종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유전적 다양성의 감소는 농업 생태계를 특정 질병이나 환경 변화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화학 비료와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은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켰다. 멕시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살충제 사용은 농작물 해충뿐만 아니라 유익한 곤충이나 토양 미생물까지 사멸시켜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수로를 오염시키며, 농업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었다.[33] 필리핀에서는 IR8 쌀 도입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었지만, 이 역시 비료와 살충제 사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35] 이러한 화학 물질 의존적인 농업 방식은 토양 황폐화와 환경 오염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녹색 혁명이 가져온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1980년대 이후 CGIAR와 같은 국제 농업 연구 기관들은 농업생태학 및 지속 가능한 농업 연구와 같은 보다 전체적인 관점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61] 이는 식량 생산 증대와 함께 환경 보호 및 생물 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3. 5. 2. 온실 가스 배출

녹색 혁명 과정에서 이루어진 농업 방식의 변화는 온실 가스 배출량 증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생산 증대를 위해 비료 사용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는 온실 가스 배출량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51] 이는 식량 생산성 향상이라는 녹색 혁명의 성과 이면에 환경적 부담이 따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3. 5. 3. 토지 사용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 토지 개혁의 일환으로 대규모 농장인 아시엔다 시스템을 해체하고, 공동 소유 형태의 토지인 에히도에 토지를 재분배했다.[31] 특히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1934–1940) 시기에 중부와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 개혁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 농업 생산성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정부는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건조 농경 방식보다는 관개 시설을 이용한 농업 생산성 향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22] 녹색 혁명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로 관개 시설이 잘 갖춰진 지역이나 신용 접근성이 좋고 기계 사용이 용이한 대규모 농업 기업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26] 이는 기존의 에히도 중심의 소규모 영세 농업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고, 기술 도입이나 비료 구매 등에 필요한 자본 접근성이 낮은 소규모 농민들에게는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관개 시설의 증가는 녹색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는 1949년 건국 이후 농업 발전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1950년에는 토지 개혁법을 제정하여 기존의 사유 토지 소유 제도를 폐지하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는데, 이는 중국 특색의 녹색 혁명을 추진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중국은 경작 가능한 농지 면적을 크게 늘리는 대신, 기존 농지의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여 식량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52] 이를 위해 고수확 품종 개발, 다모작, 체계적인 관개 시스템 구축 등 토지를 매우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47]

브라질의 경우, 1960년대 이전까지 광활한 내륙 지역인 세라도는 토양이 지나치게 산성이고 영양분이 부족하여 농업에 부적합한 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막대한 양의 석회(분쇄된 백악 또는 석회석)를 뿌려 토양의 산성도를 낮추는 대규모 개량 사업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53] 1990년대 후반에는 매년 1400만ton에서 1600만ton의 석회가 브라질 농지에 살포되었고, 2003년과 2004년에는 그 양이 2500만ton까지 증가했는데, 이는 헥타르당 약 5ton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러한 대대적인 토지 개량 노력 덕분에 세라도는 주요 농업 지대로 탈바꿈했으며, 브라질이 세계 2위의 대두 수출국이자 세계 최대의 소고기 및 가금류 수출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53]

녹색 혁명은 전반적으로 관개 시설 확충, 화학 비료 및 농약 사용 증가 등을 통해 토지 이용의 집약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특정 지역이나 대규모 농가에 혜택이 집중되고 소규모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거나, 환경 오염과 같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33][61]

3. 6. 건강 영향

녹색 혁명 과정에서 도입된 새로운 농업 기술, 특히 살충제의 사용은 인간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고수확량 품종의 재배에는 비료와 함께 합성 살충제의 사용이 필수적이었는데, 이는 농업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위험이 될 수 있었다.[33] 살충제를 살포하는 과정에서 농부들이 유해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으며, 이는 단기적 및 장기적인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또한,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은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수로를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오염된 물과 토양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간접적인 위협이 되었으며, 특히 신생아와 같은 취약 계층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33] 이처럼 녹색 혁명은 식량 생산성 증대라는 긍정적인 효과와 더불어, 화학 물질 사용 증가로 인한 환경 오염 및 건강상의 위험이라는 문제점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4. 제2의 녹색 혁명

'영원한 혁명'이라는 용어는 1990년 인도의 농업 과학자 M. S. 스와미나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는 이 개념이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녹색 혁명의 개념과 실행 방식에 생태적 차원을 더하려는 목표를 가진다.[106][107] 스와미나탄은 이를 "관련된 생태적 피해 없이 영구적인 생산성"이라고 설명했다.[106] 이 개념은 과학, 경제학, 사회학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발전했다.[108][109] 2002년, 미국의 생물학자 E. O. 윌슨은 영원한 혁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106]

: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수십억 명의 새로운 인구를 먹여 살리고 동시에 자유와 안보를 위협하는 파우스트적 거래에 갇히지 않으면서 나머지 생명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이 딜레마에 대한 정확한 해결책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점은 영원한 혁명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 새로운 추진력의 목표는 현재 존재하는 기술 및 규제 정책보다 더 발전되고 더 안전한 기술과 규제 정책을 사용하여 1960년대의 녹색 혁명으로 얻은 수준보다 훨씬 높은 식량 생산량을 올리는 것입니다.

:: — E.O. 윌슨

그러나 스와미나탄이 인도의 녹색 혁명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혁명'이라는 개념은 기존 녹색 혁명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반영한다.[110][111] 이 용어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은 최근 IPCC 및 다른 종합 보고서들에서 제시된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합의된 입장을 대체로 반영하고 있다.[112]

4. 1. 상록 혁명 (Evergreen Revolution)

녹색 혁명이 세계 일부 지역에서 단기적으로 농업 생산량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확률은 감소하고 있으며, 사회적 및 환경적 비용 문제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기관들이 녹색 혁명에서 사용된 기술을 수정하거나, 크게 보강하거나, 혹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자주 언급되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는 벼 재배 강화 시스템,[101] 표지 보조 선발,[102] 농생태학,[103]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농업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 기술을 새롭게 적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104] 2050년까지 세계 인구는 현재보다 3분의 1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식량 생산량 역시 70%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올바른 정책과 투자가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로 여겨진다.[105]

5. 비판과 반론

녹색 혁명으로 농업 생산량은 늘었지만,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에너지는 생산량 증가율보다 더 크게 늘었다[153]. 특히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서 화석 연료 및 석유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154]. 이 때문에 석유 피크 이론 지지자들은 미래의 석유 생산 감소가 식량 생산의 차질이나 맬서스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155].

녹색 혁명은 농업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지만, 화학 비료나 농약 없이는 유지가 어려워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1970년대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생산량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병충해나 토양의 염류 집적 문제로 오히려 생산량이 감소하는 경우도 보고되었다[126].

동남아시아의 벼농사 지역에서는 키 작은 다수확 품종이 도입되면서 기존에 생활 필수품 재료로 쓰이던 볏짚을 활용하기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플라스틱 같은 대체품을 구매해야 했고,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으로 인한 토양 오염은 논의 민물고기 서식 기능을 약화시켜 농민들의 부식 자급 능력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이 있다.

녹색 혁명은 수확량 증대와 저렴한 곡물 공급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러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157].


  • 농가 소득 미개선 및 가격 폭락 비판: 근대 품종 도입이 반드시 농가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수확량은 늘었지만 수요가 따르지 못해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고, 이로 인해 농민들이 빚을 지거나 농지를 담보로 잡히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 반론: 이러한 현상은 "풍년 빈곤"의 원리가 작용한 결과로, 농업 기술 발전이 반드시 농민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곡물 수요의 가격 비탄력성 때문이지 녹색 혁명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118]. 실제로 녹색 혁명 이후 국제 쌀 가격은 장기적으로 하락했으며[118][150][158], 이는 식료품비 지출 비중이 높은 도시 빈곤층 소비자에게 큰 혜택을 주었다[159]. 곡물 가격 하락은 노동 비용 감소로 이어져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160]. 다만, 실질 곡물 가격 하락은 농민 전반에게는 손실이 될 수 있으며, 특히 근대 품종을 도입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의 농가는 생산물 가격 하락으로 생활 수준이 악화될 수 있다. 이로 인해 노동 인구가 도시나 부유한 농업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시아 농민들의 근대 품종 채택이 국제 곡물 가격 하락을 유발하여 상대적으로 더 빈곤한 아프리카 농민들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118].

  • 빈부 격차 확대 비판: 녹색 혁명이 부농과 소농 간의 격차를 벌렸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대규모 농장주와 소규모 농민 간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보고가 있으며, 일부 농장주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농민을 착취하는 사례도 지적된다. 남인도에서 녹색 혁명 이후 식량 구입의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농민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161].

  • 기술 접근성 및 소득 격차 비판: 신품종 재배에는 화학 비료와 농약 구매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부유한 지주나 대농가만 혜택을 보고 가난한 소작농이나 소농은 소외된다는 비판이다. 에티오피아의 사례처럼, 신기술 도입 과정에서 소작농이 해고되고 대규모 기계화가 이루어져 실업이 증가하거나, 농지가 상품 작물 재배지로 전환되어 식량 자급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지적된다[162] (다만, 해당 사례의 작물들은 녹색 혁명과 직접적 관련은 적다는 지적도 있다).
  • 반론: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농촌 내 소득 격차가 반드시 확대된 것은 아니라는 연구도 있다[163][151]. 신품종 도입으로 인한 수입 증가가 비료·농약 구매 비용보다 컸기 때문에 소농이나 소작농도 적극적으로 신품종을 채택했다는 것이다[118].

  • 지역 간 격차 확대 비판: 관개 시설이 잘 갖춰진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간의 소득 격차를 벌렸다는 비판이다.
  • 반론: 근대 품종은 관개 시설이 잘 된 지역에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생산성이 높은 지역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소농이나 토지 없는 노동자들이 이들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151]. 이는 이동 노동자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원래 살던 지역의 인구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즉, 가장 가난한 계층에게 간접적인 혜택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지역 이동에는 어려움이 따르므로, 결과적으로 지역 간 경제적 후생 격차를 확대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118].

  • 환경 문제 (염류 집적) 비판: 신품종 재배에 필요한 관개 시설의 부적절한 관리로 토양 표면에 염류 집적이 발생하여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다. 인도 펀자브 주에서는 60000ha의 밀밭이 염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126].
  • 반론: 화학 비료나 농약의 과다 사용이 토양을 악화시켜 수확량 감소를 초래했다는 주장에 대해, 통계적으로는 그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관찰되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164].

  • 종자 비용 및 라이선스 비판: 신품종 종자 구매 비용과 종자 회사에 지불하는 라이선스 비용이 농가에 경제적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다.
  • 반론: 벼의 녹색 혁명 품종 개발은 대부분 공공 기관에서 이루어졌다[139]. 또한 녹색 혁명에 사용된 벼나 밀 품종은 F1 품종(잡종 1세대)이 아니라 형질이 고정된 품종이므로, 수확한 종자를 다음 해에 다시 심어도 같은 형질의 작물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매년 새 종자를 구매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옥수수처럼 F1 품종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매년 종자를 새로 구매해야 한다.

  • 화학 회사 이익 증대 비판: 녹색 혁명이 화학 비료나 농약 수요를 늘려 관련 회사에 이익을 안겨주었다는 비판이다.
  • 반론: 농민들이 비료와 농약을 사용한 것은 그것이 구매 비용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료 투입 없이는 높은 수확량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면 화학 비료 사용을 줄일 수 있지만, 화학 비료를 선택한 것은 농민 자신들이었다는 지적도 있다[118].

  • 농약 피해 비판: 농약 사용으로 인해 농민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았다는 비판이다[150].
  • 반론: 병충해에 강한 품종 개발과 농약 사용을 줄이는 기술(종합적 병해충 관리) 보급으로 상황이 상당히 개선되었다는 반론이 있다[118].


이상의 반론들을 종합하면,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국가에서 녹색 혁명은 쌀을 비롯한 곡물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고, 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경제 전체의 발전을 뒷받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곡물 공급 증대와 가격 하락으로 도시 노동자 중심 빈곤층의 경제적 후생 증진.
  • 농업 효율화로 발생한 잉여 노동력의 도시 이동을 통한 공업화 촉진.
  • 농촌 최빈곤층인 토지 없는 노동자에 대한 수요 증가 및 경제 상태 개선.


만약 녹색 혁명이 없었다면 곡물 가격 상승, 노동자 생활 수준 하락, 농촌 노동력 정체 등으로 경제 발전에 제동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118].

그 외 비판으로는 각 지역 토착 재배종이 사라질 위험이 커졌다는 점이 있으며, 재래 품종의 보존(유전자원, 유전적 다양성 보존)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재래 품종이 가진 다양한 유전자는 미래 육종에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녹색 혁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연 농법 보급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유기 농산물과 달리 자연 농법은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재배자나 단체의 자체 기준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한편, 곡물 공급 증가와 가격 하락이 산림을 개간하여 경작지로 만들 유인을 줄여 환경 보전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117]. 이는 녹색 혁명이 거의 도입되지 않아 식량 생산 정체와 경작지 확대를 위한 산림 벌채, 사막화가 진행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상황과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뒷받침된다[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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